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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상,반려동물

닭장에 드리운 야수의 그림자

by 솜니퍼 2020. 11. 2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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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녀석이 며칠 전에 소개 드렸던 엄마 고양이에요. 자식을 몇 번씩이나 낳은 터라 이제 좀 어른이 됐으려나 했는데 

가끔씩, 아니 조금 자주, 영원한 아기이자 장난꾸러기, 타고난 사냥꾼이다 싶게 고양이다운  행동을 하는 바람에 지켜보는 사람이 숨울 죽이고 킬킬거리게 될 때가 있답니다.

어느날 이 녀석이 숲에 나타났어요.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 닭장 근처의 숲이라고 해야겠지요. 몇 걸음만 내 딛으면 바로 닭장이니까요.

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보입니다. 이 어른 고양이가 갑자기 이런 표정을 짓는 이유는 여기만 오면 한 판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사냥감이 가득하기 때문이에요. 사실 농장 아주머니가 살뜰하게 챙겨 주시기 때문에 배가 고파서 그런 것은 아닐텐데 이 근처에만 오면 뭔가 일을 벌리고 싶은가 봅니다.

이제 반짝 떠오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면 주변을 우선 잘 경계해야 합니다. 생각지도 못하게 닭이 저를 먼저 발견하고 꼬꼬댁거리면서 날뛰거나  눈치 없는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"야옹아, 여기서 뭐 해?" 하며 판을 다 깨버리기도 하니까요.(두 발짝 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저는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듯 합니다. 평소에 맛있는 것을 잘 챙겨주는 맘씨 좋은 옆집 집사로 인정한 것 같습니다)

주변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포식자가 살금살금~ 고양이의 전형적인 숨어들기 작전 때의 걸음걸이로 닭장 입구 쪽으로 다가갑니다 . 정말이지 발소리 하나 내지 않고 살금살금 기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커다랗게 웃어버리면 고양이가 민망해 할까봐 키들키들 숨을 죽이고 웃느라 지켜보는 사람은 좀 힘들었어요. 고양이의 탈을 쓴 야수가 한 발 한 발 가까워지고 있는데도 이 꼬꼬댁 녀석들은 세상 모르고 평화롭기만 하네요.

이제 목표물에 거의 다 왔습니다. 저 문만 손으로 깔짝깔짝 해서 연 다음 닭장 안으로 입성만 하면 게임 끝이니까요. 

포식자의 긴장감! 한 손을 들고 어떻게 조용히 문을 열고 뛰어들지 궁리하고 있습니다.

닭들은 고양이의 존재를 알고도 무시하는 것인지 아까 한 번쯤 눈길이 마주쳤던 것 같기도 하지만 여전히 여유롭게 노니는데 고양이는 저 혼자서 잔뜩 도사리며 긴장감 최고조입니다. 한 발 더 앞으로 나가 금새라도 뛰어들 것 같은 자세... 과연 이 고양이는 닭장 진입에 성공 했을까요? 사실 이 아이가 닭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걸 모르고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아니랍니다. 저기 저 문은 보기에는 허술하지만 문고리에 튼튼한 걸쇠가 걸려있기 때문에 아마도 사람이 볼 때나 안 볼 때 수 차례 진입을 시도 했다가 난공불락이란 걸 진즉에 깨달았을 겁니다.

아쉬운 냥통수... 심장을 쫄깃거리며 시도했던 닭사냥은 스스로의 현실자각으로 일장춘몽이 되고 말았습니다. 가끔식 이렇게 야수의 모습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저 뒷통수를 보면 누가 닭을 노리는 포식자라하여 미워할 수 있겠어요. 세상에 이보다 더 재미있는 드라마가 어디 있을까요~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아이들과 이렇게 평화(?)롭고 자연스러운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이곳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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